NYC People
세바와 나는 운이 좋게 맨하탄에 사는 친구 Angela 의 도움을 받아 여행내내 친구 거실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 곳은 Central Park 와 5분 거리.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공원을 몇시간씩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과거 맨하탄에 살면서도 센트럴파크의 10% 밖에 보지 못한 나는 이번엔 실컷 푸르른 공원을 매일 아침 누리기로 마음먹었다. 5월초, 향긋하게 꽃이 피기 시작한 뉴욕도 이제 수만명의 관광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세바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는 21살 젊음이라는 명찰과 30살의 학사모 사이, 살아남을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고립된 외국인 학생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난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여자였고, 커뮤니티에 첫발을 내딛인 사회적 신생아, 내 안에 신을 찾던 방랑자, 쉴틈없이 책을 읽던 독자, 독립영화만 찾아 보던 희안한 골목 고양이였다. 이 모든 혼란함을 겪고있던 21살 나는 또 하나의 찬란하고도 초라한 뉴욕의 한 세포였다. 세바는 내가 그때 무엇때문에 고통 스러웠는지 종종 여행 내내 물어보곤했다.
그동안 나에겐 너무 많은 일이 지나쳐갔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들은 그 당시 내 모습을 스크린 샷 처럼 가지고 있는 걸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과거의 나를 가장 잘 기억하는건 내 자신이 아니라 바로 나와 함께 한 친구들. 만나서 함께 점심을 먹던 일본인 친구 히카루는 갑자기 ESL 교실에서 번쩍 번쩍 손을 들고 항상 먼저 내 에세이를 발표하던게 생각이 난다며 세바를 웃겼고, 잠시 일을 하다 나와 우리를 반겨준 친구 마델린은 그때 내가 첫사랑을 멀리보내고 학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나를 기억했던지, 이제 그 성장통 같은 아픔은 다 사라졌냐고 물어보았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매튜는 세바에게 옛날에 내가 센트럴파크에서 혼자 드러누워 한시간씩 낮잠을 자고 다녔다고 하며 잊었던 날들을 꺼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다 잊을만 했던 21살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뉴욕에서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의 스승, 매튜. 매튜 첫인상은 아주 재수가 없었다. 생긴게 아니라,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거만했고, 나이든 백인 남자로서 너무 재수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렇게 첫인상이 아주 나빠서인지 가면 갈 수록 그분은 내가 생각한것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걸 알게 됬다. 그분은 내가 잴 싫어하는 영어 에세이를 내가 잴 좋아하는 과목으로 만들어 주셨고, 학생들이 어떤 의견으로 어떤 관점으로 글을 쓰던간에 친구들과 나누고, 친구들의 조언을 서로 글로 주고 받고, 그걸 토대로 다시 몇번이고 재고를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남이 해주는 조언을 귀담아 듣되 결국 그 글의 변화는 자신이 원하는데로 자유롭게 쓰는 방법을 가르켜 주셨다. “누구나 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다르다. 니가 어떻게 걸어가느냐는 네 결정에 따른것이다. 그 처럼 자유롭게 써라.” 그분은 글을 비했을 뿐이지 내가 일년 동안 자라는 과정을 보면서 내 삶도 그러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멀리서 바라보셨다. 내 이야기를 시간이 나시는 동안 신중히 들어주시고, 그리고선 전혀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기위해 노력하셨다. 심지어 내가 조언을 요청해도 쉽게 조언해 주지 않으셨기에 가끔 화가 날 때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성질이 급한 학생이었다. 그때 나는 21살 학생이었지만 이제는 9년간 인연을 가꿔온 친구가 되었고, 그분에게 나는 이제 지구 반대편에 사는 색다른 인종이 아니라, 이웃나라 캐나다에 사는 옆집 친구가 되었다. 그날 또 여전히 아침에 센트럴파크에서 산책을 하던중 세바는 나를 쿡 찌르면서 말했다. “매튜 선생님한테 전화한번 해봐.” “안받으시면 어떡하지?” “메세지 남기면 되지.” 난 9 년동안 손편지와 엽서만 주고 받던 매튜의 음성을 들으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전화를 걸자마자 매튜의 부인께서 전화를 받으셨고, 매튜가 교회에서 홈리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일을 하러 갔다고 하셨다. “그럼 매튜에게 이 전화번호로 전화 해 달라고 해주세요.” 나는 상냥하게 모닉에게 인사를하고 매튜가 전화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몇시간 후, “헬로?” 매튜의 목소리 였다. 나는 너무 신이나 “매튜!” 라고 소리쳤고, 매튜는 그를 당장 알아본 내가 신기해서 인지 어떻게 자신인줄 알았냐고 물었다. 세바와 나는 매튜가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고 하자, 귀찮지 않으면 우리도 함께 영화관에 가도 되냐고 여쭤 보았다. 매튜는 친구들로 부터 추천 받은 독립 영화인데, 내용이 우울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우리는 짧지만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매튜와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영화관 밖 분수대에 앉아 나눴고, 세바도 드디어 내가 매일 말하던 매튜를 만나 그 선생님이 내 인생에 어떤 중요한 분인가를 나와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본 영화는 The salt of the earth 라는 다큐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거대한 일생을 보게 되는 기회였다. 우연히도 이 다큐에 나오는 사진작가의 이름은 Sebastião Salgado 였고, 처음에 그저 색다른 곳을 찾아 사진을 찍는 사람인줄 알았던 Sebastião는 다음 챕터로 넘어갈때마다 나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짓밟았다. 나는 그분에 비하면 내 인생은 영혼이 없는 인생인것 같았다.
매튜는 헤어지면서 나를 꼭 껴안고서는 다음에 또 보자는 내말에 담담한 희망을 가진 웃음을 던졌다. “걱정마세요 선생님. 나 자주 내려올께요.
여러분도 저 처럼 꼭 보고싶은 사람이 있나요?
All photos by Sebastien Benoit
인연을 만드는것!그 인연을 소중히 이어나가는것!!
그 인연 속에서 보물을 찾아나가는것!!
우리 세진이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아~~^^
열심히 하는것 같아도 뜨문뜨문 했을 뿐이다. 선량이 니가 더 성실히 잘 하지~ 니 보면서 내가 배운게 많다. 우선 책상부터 깔끔하 치우는것, 제 시간 지키는 것, 니야 말로 self discipline 의 대명사!!!
혼란스러웠던 21살을 보냈구나 세진ㅡ내가 기억하는 20대초반의 너는 언니같았고 한편으론 어린 소녀같았어ㅡ 대구에 잠시 내려와서 나에게 귀여운 신데렐라필통을 사주며(20대의 여자에게 무려 신데렐라필통!!!핑크색!!) 너의 삶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하곤했었지ㅡ 우물안 개구리 같던 나에게 니 이야기는 신기하기만 했었어ㅎㅎ 그때는 혼란스러웠겠지만 시간이 지나 남은 소중한 인연들 ㅡ참 좋아보인다 세진^^
이것봐!!! 나는 기억도 안나는 요런 신데렐라 필통같은 어리뚱땅한 이야기… ㅋㅋㅋ 나는 참 클려면 멀었구나. 나도 우물안 개구리 였지. 밥한끼 사줘야 됐었는데 필통으로 때우다니 ㅠㅠ
햄쥐한테만 핑크색 신데렐라 필통을 사주다니!!!
보고 싶은 사람이야 많제~ 인생이 온통 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일
투성이라네
ㅋㅋㅋ 그러게 니랑은 맨날 뭐하고 댕겼을까? 지금이라도 하나 사주고 싶네~ 요즘 주로 읽는 글은 뉴욕에서 몇십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러 어디든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은 글. 어떻게 보면 자유는 돈보단 시간이더군.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지켜나가는 현명한 세진!
나는 보고싶은 사람들과 연락을 못한지 오래되어 이제 볼 수가 없는데 .. 부러워지네
내가 연락을 잘 못하고 살잖아 우리 사이도 세진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미안하고 그래도 늘 생각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도 뉴욕가고싶다!! ㅜㅜ
미쏘~ 내 노력이 아니라 소셜미디어의 힘이지~ ㅋㅋㅋ 나도 잘 부탁해. 니가 이제껏 좋은 친구로서 옆에서 같이 있어줘서 너무 고맙다. 뉴욕에서 스노우글로브 가져와준 니가 웃겼지만 너무 너다운 모습이라 좋았어. ㅋㅋㅋ
오우…뉴욕에서 참 다사다난한일들이 있었네요..ㅎㅎ
갑자기 세진쌤 새롭게 보이는듯…ㅋ
언제쯤에나 저 땅을 밟을 수 있을까요?..ㅋ
응, 근데 20살때 겪는 그런 일들중에 하난거 같아. 기훈이도 지금 그 시기를 겪고 있을수도 있고~ ㅋㅋㅋ 뉴욕에서 만약에 언어 연수 할 생각이면 6 개월 정도갔다오는게 딱 좋을거 같아. :) 날씨 좋을때 다녀와~
진짜 너 수업시간에 열정적으로 발표하고 의견 말하던거 나도 기억나ㅋㅋㅋ
글 읽으면서 나도 덩달아 그 때 기억에 잠겼네 정말 뭘 해도 하루하루가 신나던 때다
매일 수업 끝나고 다같이 카페테리아에서 점심 먹던 사소한 기억도 나고
패쓰 타고 뉴저지 호보큰에 같이 놀러갔던거도 생각나네 앗 충유 생각난다 충유는 연락해?
여기만 오면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고 싶어
no more travel NYC,,,wanna live in NYC!!!ㅋㅋㅋ
언니도 다 기억하고 있네요~ 카페테리아 구석에서 우리끼리 모여 이야기 하고, 호보큰도 가고, 브라질 레스토랑, 아이텍이 일하던 터키 레스토랑도 갔는데. 충유 언니가 말꺼내니까 이제 기억이 나여. 연락은 못하고 있고요…충유도 뉴욕에 있을라나? 그때 친구들 다 모아서 파티하면 웃기겠죠? 그 당시 다 모여 있을때가 얼마나 귀한 시간인줄 이제야 알겠어요. 나중엔 그렇게 모이고 싶어도 모일수가 없으니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