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riend J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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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포스팅을 하게 됬다.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Saint John 으로 삼주간 집을 고치러 가게되었고, 계속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계속되는 육체노동과 법원일로 또 몇주를 설렁설렁 넘기고야 말았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홀로 글을 쓰기위해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것도 여러번 일주일 간에 거쳐 올리는 글이다.)

집은 시댁 가족들의 도움으로 내가 캠브리지로 돌아 온 이후에도 잘 해결이 되었고, 또 친구 정미가 고맙게도 나를 대신해서 내 역할을 잘 해줘서 집 유지보수하는 일은 순탄했다. 나는 이번에 정미에게 특별한 마음이 생겼다.  정미를 알게된건 우리 시어머니가 봉사활동으로 불어를 가르쳐주는 센터에서 정미의 언니가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정미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정미의 캐나다 생활에 내가 작은 동료가 되었고, 나도 정미로 인해 한국사람이 그리워지고 한국말을 하고 싶고 하는 향수병을 겪을 새가 없었다. 정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정을 주고 만난 사람들도 나처럼 정미의 존재를 너무 고마워 할것이다. 우리는 부모도 다르고, 자라난 배경도 다르고, 받아온 교육도 다르지만 최근 살아온 자취속에 서로의 삶을 잘 알고, 서로의 가족을 잘 알고, 서로의 일상을 잘 알고 있다. 알고만 있는게 아니라,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더욱 신기한건 우리가 차로 16시간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산지 일년이 지나도, 서로의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미는 이번 여름에 한국에서 두 달간 있으면서 다시 본토 한국어 (한국어 원어민과 함께)를 습득했고, 나는 아직까지 3년간 캐나다 밖을 나간 적이 없어서 정미의 능숙한 한국어를 부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은행일로 기업은행이나 우리은행에 전화를 하게 되면 이 어색한 은행용어와 상황에 맞는 인삿말을 쓰는게 얼마나 어색한지 나도 전화를 끊고 어색함에 뼛속까지 쑥스러울때가 많았다. 한번은 은행 관계자가 “고객님, 오늘 문의하신 일 외에 또 도와드릴 일은 없나요?” 라고 물었을때, 나는 “No, that’s all for today.” 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걸 한국어로 했을때 “오늘은 하고싶었던 일은 이게 다예요.” 라고 내 뱉은 적이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급하게 전화를 끊었는데, 정말 정말 다시 생각해도 어색한 한국말이었다. 또 최근에 내가 한화로 송금할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나 한국돈 없어.” 라고 했더니 국어선생님인 친구 정숙이는 “한국돈이 없다니. 뭔가 희안한 말이여.” 이러면서 “괜찮다. 한국 사는 사람도 한국돈 없니더.” 라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정미도 한번은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시킬때, “아주머니 저는 (Spicy Pork) 매운돼지 주세요.” 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마 오래전 이민 온 가족들의 한국어가 내 귀에 어색하게 들리는것 처럼 내 한국어도 그렇게 퇴색하진 않을까 걱정된다.

Jungmi

정미야, 너의 매운돼지 이야기를 공개해버렸어!

 

All photo by Se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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