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George

최근에 캠브리지에 정착한지 일주일이 좀 넘은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한두시간 가량 한 후 카페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어느 캐나다인이 우리 뒤에서 자리에 앉지 않고 한동안 서있더니 다가와서는 자기 노트북을 가리키며,

“저기는 수원 입니다.” 라고 어설픈 한국어를 했다.

캠브리지는 동양인도 하루에 한두명 밖에 볼 수 없는 백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데, 이렇게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반갑고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오래 걸어서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다가 오는 이유가 뻔해서였는지 환대할 기운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들어주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그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상대가 말하는 동안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이분의 이름은 George 였다. 성은 발음하기 어렵다며 가르켜 주지도 않으려고했고, 들어도 잊어버려서 정확한 full name 을 모른다. 머리의 절반은 희끗희끗 하고 홀쭉 마른 체형에 앞니는 커피를 많이 마셔서 인지 담배를 펴서인지 누렇게 변했고 얼굴은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뿜어 나오는 목소리는 연약하고 조심스럽고 조금은 두려운 듯한 그런 떨림 이었다. 나는 그사람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선생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분 이야기를 듣자니, George는 폴란드인 어머니와 라트비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어떻게 인연이 되서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며 살게 됐는데, 그곳에서 승무원인 한국인 여자친구와 3년을 사겼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때문에서 인지 이 한국인 여자친구는 처음에 사귈때와는 달리 George에게 할말이 없어졌고, 이해심이 식어갔고, 더이상 인연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 여자분은 곧 다른 남자를 사귀게 되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봤을때 그녀가 임신을 한 상태였다. 아마 이것이 한국을 뜨게 한 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George 는 그 뿐만 아니라 안양에서 경험한 자신의 Ugly 한 한국 경험을 이야기 해 줬다.

한국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자신들과 관련없는 외국에 세상사는 이야기나 기사거리를 주제로 이야기 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가진다고 한다. 모두 독도가 아닌이상 중국과 일본간의 영토권 주제는 할말이 없다고 한다. 이에반해 중국에서 같은 수업을 하면 같은 또래의 중국 아이들은 각양 각색의 대답이 나오고, 토론의 자세가 한국과는 편이 다르게 수준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반에 왕따가 있으면 한국 학생들은 그 한 아이에 관해 물어보면 모두 편향적인 같은 의견이 나오는데 반해, 중국아이들에게 반 왕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한참 생각을 한 후에 그 아이의 상황과 배경과 자신의 위치를 조목조목 이야기해 주었다고 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이 말을 걸어오는데 굉장한 벽을 두고 누구든지 자신에게 ‘매운걸 잘먹어요?’ 그런 재미없는 똑같은 질문만 던지며 본인이 한국어를 하도록 장려하지 않고 무조건 영어로 이야기 하려한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에 가보면 모두 중국말로 그에게 말을 걸고, 그가 중국말을 하면 아주 좋아해주고 행복해해 한다고 했다.

이래저래 한국 사회에 염증이 쌓인 그는 나와 내 친구에게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이런 안좋은 점들을 이야기 하면 정말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계속 한국에 대한 자신의 한을 이야기 하는데 눈치를 보는듯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한국사람들을 살펴보면 자신들이 얼마나 군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가 군인이 지배한 정권을 버리고 살긴했지만 그 정신은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게 사회생활속에 속속이 묻어있는데 가장 쉽게 먼저 인사를 하는 부분에서 그것이 보인다고 한다. 회사에서 나이가 많은 상사에게 허리를 구부려서 인사를 해야하는반면에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같은식으로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모든 음식점에만 들어가면 ‘어서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라는 일률적인 말만할뿐, 그 외에 대화는 절대 하지않는, 손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개인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삶이 아닌, 모두 판에 박힌 대화만 나누는 한국. 좋은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업을 구해서 적당한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그런 일률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들. 그 틀에서 벗어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살면 일반적인 삶에서 실패한 인간이라고 보는 사람들.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고, 밖은 비가 주룩주룩 내려 우선 내 마음만 뛰쳐나가게 내버려뒀다. 이후 우리는 다시 George를 마주친 적이 없다.

Photo by Sebastien Benoit